지난 6월 5일 주일예배를 마치고 다음날 현충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성휘, 성연이와 송도에 있는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 갔다왔다.
처음에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카메라의 베터리가 다 되서 사진을 많이 못찍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좀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내가 지쳐서 그냥 성휘, 성연이에게
인천상륙작전이 뭔지만 대충 설명해주고
마침 6.25 전쟁의 발발과 3년간의 전쟁중에 있었던 역사적 일을
시간상으로 나열한 사진을 보며
지난 반세기 전의 아픈 역사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들어가기 직전
난 저게 그저 '탱크'인줄만 알았는데 알고 있었는데 탱크라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럼 뭐였더라..??에혀.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 윗층에 가보니 전시실 들어가기 전에 주차장 입구에 있던 거랑은 다른
모양의 '탱크' 비슷한 것이 있었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저 안에서 군인들이
몇 명이나 들어갈 수 있을까? 막상 좁고 많이 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이 강해 눈을 가렸는데 마치 군인아저씨처럼 경례를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성연이.
이때까지만 해도 성연이는 저게 어디에 쓰이는지 별로 관심도 없다. ㅠㅠ
전시실 앞에 해병대 캐릭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성휘가 고개를 내밀어 한 컷씩!
사실, 저리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아닌데
왠지 요 아래 사진 속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시실 밖에는 저렇게 간이 이젤에 당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을 한 사건부터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5년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고 38선이 그어지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대 시위와
48년 남한의 정부 수립 및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의 발발과 단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부산과 그 주변 일부를 제외한 남한이 거의 북한군에게 밀려 빼앗긴 것이
채 3개월도 안된 기간에 일어났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돌아가셨지만 그 때 우리 아빠도 북한군에게 잡혀 거의 돌아가실 뻔 했다 하고
엄마는 북한 군인들한테 밥도 해주고 그래야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개입하게 되고
부산으로 가지 않고 한반도 중앙과 서울 수도가 가까운 인천에 상륙작전을 하게 되었다.
인천 월미도는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섬이란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섬이어서 처음에는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진 속에는 월미도에 상륙하는 미군들의 사진과
미군에게 잡히는 북한 병사들. 그리고 바로 인천 시청을 되찾고
며칠 뒤 서울을 수복하고 시청에 태극기를 올리는 사진도 있다.
다시 북한을 향해 진군하던 유엔군과 한국군이 압록강근처까지 올라가며 북한을 밀어부쳤지만
겨울이 오고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쟁은 다시 남한에게 불리하게 된다.
한강을 중심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 많은 민간인들이 죽고 군인들이 죽고
시간이 지날 수록 서로에게 상처만을 주는 전쟁을 3년만에 휴전하기로 결정.
지금까지 60여년동안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는 역사가 생생하게 사진 속에 있었다.
수많은 고아의 사진들.
당시의 천막학교 모습.
죽은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어린 아이의 사진이
아직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
저 뒤의 국기들은 당시 우리나라 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의 국기들이다.
그리고 전쟁에 사용했던 무기가 그때를 기억하는지 의연하게 서있다.
전쟁은 정말 너무 슬프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서 도장을 찍었다. 일기장에 붙이라고...
전시실 안에는 당시 한국군, 북한군, 미군, 중공군의 군복과 사용했던 무기들, 도시락, 철모 등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 인천상륙작전을 총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당시 영상과
사용했던 모자, 선글라스, 담배파이프 등이 있었다.
성휘, 성연이는 아직 와 닿지 않은 듯 하였다.
사실 내가 어릴 때 현충원에 갔을 때도 그닥 와닿지가 않았다.
성연이는 사진 속의 고아들이 참 불쌍하다고 하였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뺏지와 태극기 찍는 체험장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왔다고는 했지만
나에게도 귀한 시간이었다.
이 땅에 다시는 저런 아픈 역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성휘성연이는 돌아와 일기를 썼다.
성연이의 일기에는 두 가지 느낌을 썼다.
첫째는 20대때 함께 전쟁터에서 싸웠던 친구의 묘지를 방문한
어느 할아버지의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는 것과
내 설명의 마지막 부분을 기억했는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성휘와 성연이가 사는 세상에는
저런 아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라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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