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학

[스크랩] [김별] 비(觀)

결실한 포도나무 2012. 6. 20. 22:22

     

                                    

 

                                                   비(觀) / 김별

 

 

 

 

 

      아침에 쓰던 시가 저녁이면 흐려지네

      당신의 안경알 위로 들이치던 저녁의 빗소리처럼

      자꾸만 흐려지네, 어느 비 오던 날

      내 시에서 비관을 읽었다 말하는 당신을 말없이 안아주던 그날처럼

      어두워지네, 그때 당신의 비관이란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비를 바라보는 일이었단 걸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알게 되네,

      돌이켜보면 내가 아는 당신이란 늘상 비관에 젖어 비 내리는 풍경일 뿐

      그러나 이따금씩 햇빛 좋은 날에도 그때를 떠올리게 되는 건

      당신이 항상 비관하던 그 자리에 남아

      안개를 쏟듯이 흐려지는 당신의 실루엣 때문일까,

      이제 나는 비를 내리는 것도 멈추는 것도 온전히 당신의 힘이라 믿네

      비관하던 당신을 비관처럼 생각하는 나를 보면 혹시 당신은 비관할까,

      아침에 찾아온 당신이 저녁에는 흐려지네

      비를 내리고 멈추고 하는 것이 당신 아니라도 상관없네

      어차피 창밖에는 계속 비가 오고, 우리 같이 비관하던 그 자리

      흐려져 오로지 비관만이 남았네

 

 

 

 

                                        -『2012 젊은시』(문학나무, 2012)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푸른하늘저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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