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학

향기로운 비-이어령

결실한 포도나무 2012. 4. 16. 22:42

향기로운 비

-사랑하는 薰雨에게

 

                               이어령

 

얼마나 큰 슬픔이었기에

너 지금 저 많은 빗방울이 되어

저리도 구슬피 내리는가.

 

한강으로 흐를 만큼

황하를 채울 만큼

그리도 못 참을 슬픔이었느냐

 

창문을 닫아도 다시 걸어도

방안에 넘쳐나는 차가운 빗발

뭔가 말하고 싶어 덧문을 두드리는

둔한 목소리

 

그런데 이 무슨 일이냐,

시든 나뭇잎들은 네 눈물로 살아나

파란 눈을 뜨고

못생긴 들꽃들은 네 한숨으로 피어나

주체하지 못하는 즐거움으로 빛살을 짓는다.

 

얼마나 큰 기쁨으로 태어났으면

저리도 많은 빗방울들이

춤추는 캐스테네츠의 울림처럼

 

그리움에 목 타는 목을 적시고

미어지는 가슴을 다시 뛰게 하더니

어느새 황홀한 무지개로 오느냐.

 

향기로운 비가 내린다.

너 지금 거기에 살아있구나.

표주박으로 은하의 강물을 떠서

 

잘 있다 잘 산다 말하려고,

너 지금 그 많은 비가 되어

오늘 내 문지방을 적시는구나.

 

비야 향기로운 비야.

 

*작가의 변-

생명은 부드러운 것 이기에

딱딱한 껍질의 도움이 필오합니다.

상하기 쉬운 온 몸을 가벼운

상처에도 흔적을 남기기 쉬운

까닭입니다 . 우리는 부드러운 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무쇠처럼 단단한 물질에 둘러싸여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우리는 달의 한 면 밖에는

볼 수가 없슴에

인간은 달의 경우처럼 죽을 때까지 남이 볼 수 없는

이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의 몸 나의 집은 태초의 빛이 되지 못한

작은 파편들의 하 나인 것입니다.

이제 태초의 공간으로 돌아가 시의 언어로 추억 속의 파편들로

지금 거친 모래알들로 불꽃을 만들려고 합니다.

태초의 부르심 있어 새벽보다 먼저

빛의 목소리가 계셨슴을 알았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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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으로 쓰인 부분이

가슴을 적신다.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