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비-이어령
향기로운 비
-사랑하는 薰雨에게
이어령
얼마나 큰 슬픔이었기에
너 지금 저 많은 빗방울이 되어
저리도 구슬피 내리는가.
한강으로 흐를 만큼
황하를 채울 만큼
그리도 못 참을 슬픔이었느냐
창문을 닫아도 다시 걸어도
방안에 넘쳐나는 차가운 빗발
뭔가 말하고 싶어 덧문을 두드리는
둔한 목소리
그런데 이 무슨 일이냐,
시든 나뭇잎들은 네 눈물로 살아나
파란 눈을 뜨고
못생긴 들꽃들은 네 한숨으로 피어나
주체하지 못하는 즐거움으로 빛살을 짓는다.
얼마나 큰 기쁨으로 태어났으면
저리도 많은 빗방울들이
춤추는 캐스테네츠의 울림처럼
그리움에 목 타는 목을 적시고
미어지는 가슴을 다시 뛰게 하더니
어느새 황홀한 무지개로 오느냐.
향기로운 비가 내린다.
너 지금 거기에 살아있구나.
표주박으로 은하의 강물을 떠서
잘 있다 잘 산다 말하려고,
너 지금 그 많은 비가 되어
오늘 내 문지방을 적시는구나.
비야 향기로운 비야.
*작가의 변-
생명은 부드러운 것 이기에
딱딱한 껍질의 도움이 필오합니다.
상하기 쉬운 온 몸을 가벼운
상처에도 흔적을 남기기 쉬운
까닭입니다 . 우리는 부드러운 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무쇠처럼 단단한 물질에 둘러싸여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우리는 달의 한 면 밖에는
볼 수가 없슴에
인간은 달의 경우처럼 죽을 때까지 남이 볼 수 없는
이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의 몸 나의 집은 태초의 빛이 되지 못한
작은 파편들의 하 나인 것입니다.
이제 태초의 공간으로 돌아가 시의 언어로 추억 속의 파편들로
지금 거친 모래알들로 불꽃을 만들려고 합니다.
태초의 부르심 있어 새벽보다 먼저
빛의 목소리가 계셨슴을 알았슴에.
===================
붉은 색으로 쓰인 부분이
가슴을 적신다.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