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the Lord Made
2004년작 영화 <신이 만든 어떤 것>을 보았다.
일단 평점. 10.0만점에 10.1을 주고 싶다
Octorber Sky나 빌리 엘리어트, 시 비스킷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항상 그렇듯
창작되어진 것들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실화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가슴 속의 울림이 더욱 깊다
이야기의 배경은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등이 역사를 쓰고 있는
20세기 초 미국의 한 작은 마을이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들이 길을 걷다가도 백인이 지나가면
길을 비켜주고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해야 하고
버스에서도 앞쪽은 백인들이, 뒤쪽은 흑인들이 앉아야 하며
한 건물에서도 화장실 문에는 White, Color가 구분되어 있어 따로 사용해야 한다.
주인공 비비안 토마스는 흑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집을 수리하는 일을 하면서도 의사가 되고 싶은 꿍을 이루기 위해
7년동안이나 돈을 모으지만
그가 저금해놓은 은행이 파산하며 의대 입학을 포기해야 한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소개로 열정적인 외과 의사 블레이락의 연구소에서
임상실험용 개를 돌보고 청소하는 일을 얻게 되면서
틈틈히 의학 전문서적을 읽고 의학관련 도구들을 익힌다
비비안의 범상치않음을 눈치챈 블레이락은
비비안에게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서서히 그들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획기적인 방법-수혈-을 수술중 사용하는 연구로
당시 전쟁에서 죽어가는 많은 병사들을 살릴 수 있었다.
블레이락은 이 공로로 미국의 최고 병원인 존스 홉킨스 병원 교수로 오게 되었고
비비안도 연구원의 신분으로 함께 홉킨스 병원으로 올 수 있었다.
그곳에서 청색증을 앓는 선천적 심장병을 가진 아이들을 보며
두 사람은 그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손재주 좋은 비비안은 수술용 집게를 만들고 개를 통해 임상실험을 하며
문제가 되는 심장을 수술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교수를 돕는 동료로서의 신분으로만 알고 있던 비비안이
결국 3급 잡역부와 같은 노동자 신분으로 취급받는 것에 비애를 느끼며
블레이락을 떠나고자 한다.
영화의 극적인 장면을 살리고자 그랬겠지만
그가 임상수술을 마치고 난 뒤 문을 나선 후
수술대 위에 누운 임상실험용 개를 보고
블레이락은 말한다. "Something the Lord made!"
영화에서는 비비안이 블레이락을 3번 떠난다.
첫번째는 처음 블레이락의 연구소에서 일하며 수술중 수혈을 성공시켰을 때
그것들을 기록하는 어떤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았다고
블레이락이 매우 분노하며 소리질렀을 때다
그런 기계가 있는 줄도 몰랐던 비비안은 연구에 관련된 내용을 매우 자세하게
그림과 함께 기록을 해놓았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블레이락은 비비안을 쫓아가 사과하고 함께 일할 것을 청한다.
두번째는 존스 홉킨스에서 자신이 연구원 자격이 아닌 3급 잡역부 역할이란걸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성공적인 임상수술을 뒤로 하고 떠난다.
두번째 떠났을 때 비비안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내와 자녀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든 결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신이 만든 것과 같은 뛰어난 그의 수술실력(눈을 감고 수술을 한다)에
블레이락은 그의 집에까지 찾아가 급료를 올리는 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를 다시 병원으로 데려온다.
세번째는 최초로 심장수술을 성공하고 나서 블레이락의 명성이 세계를 휩쓸때
많은 의학 잡지와 연구발표회 등등에서
자신의 어떤 공로로 언급하지 않는 블레이락을 보며
배신감과 자괴감으로 홉킨스 병원을 떠난다.
블레이락을 떠난 후 비비안은 새로 의학공부를 하고자 대학문을 두드렸지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의약품을 팔러 다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그는 다시 블레이락을 찾아가고
그가 없이는 어떤 수술도 할 수 없었던 블레이락은
긴 유럽여행 끝에 그를 맞이한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둘의 만남과 병원에서의 생활, 연구들로
수많은 아이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비비안은 결국 의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의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존스홉킨스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의학계에서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신의 초상화가 존스홉킨스 병원 벽에 걸리는 영광을
블레이락과 함께 비비안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실제 그 두 인물의 초상화가 극 중 초상화와 나란히 나온다.
지금도 존스홉킨스에 가면 이 두사람의 초상화를 볼 수 있겠지?
영화를 보다보면 블레이락이란 인물이 매우 이기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비비안이 세번째로 떠나간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렇게 재능과 열정이 많은 젊은이를 자신의 경제적 능력으로
의과 대학을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또한편으로는 비비안이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 돈을 모아 의대에 진학을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 두 모습 모두 인간의 연약함이 아니었을까?
29세에 결핵을 앓으며 다시 살아난다면 생명에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는 블레이락은
평생 자신이 이루기 위한 어떤 것을 놓치기 힘들었을 것이고
비비안은 현실적 상황앞에 사랑하는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며 애둘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같은 일을 했으나 한 사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명예와 돈과 업적등을
모두 다 얻을 수 있었고 한 사람은 뒤에서 조용히 그 이름조차 드러내질 못했다.
그 밑그림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역사가 있고
7년동안 모은 돈을 한푼도 받지 못할 어이없는 상황임에도
전혀 밖으로 분노를 내뱉지 않는 비비안의 개인적 성향도 있으며
비비안의 능력과 재능이 없이는 의학적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을 알면서도
그의 지대한 노력을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블레이락의
비겁함과 부끄러움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결국 위와 같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가, 아니 실제 그들의 인생이 그것으로 끝이 났다면
삶이 참 공평하지 않고 때론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을 테지만
다행히 이 드라마틱한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평생을 설명하기 힘든 죄책감으로 살다 생을 마감한 블레이락,
그리고 그런 영광이 과연 주어질까 했던 비비안에게
박사학위가 주어지고 블레이락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린 걸 보면
인생은 정말 마라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오래 인내하고 참다보면 언젠가 복을 받는다...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채우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명예, 자기만족, 돈 등등 외적인 것이 아니라
비비안처럼 자기가 일생을 통해 꼭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온 힘을 바치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소망과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한사람, 한사람이 <신이 만든 어떤 것>들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DNA가 우리 속에 흐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신 놀랍고 귀한 재능과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설계도도 함께 내장되어있다.
오늘, 나에게 갖고 계신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다시한번 기도하게 된다.
또,
우리 성휘와 성연이에게 주신 재능과 계획을 위해 기도한다.
인간적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성휘가
장애 2등급일 뿐이지만, 그런 모습으로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전적으로 믿으며
성연이에게 의료 선교사의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언젠가 우리 성연이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저 두 인물의 초상화를 마주대하고 서 있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늦은 밤, 행복한 영화 읽기에 취한 내가 좋다^^
꿈을 통해 실패한 임상실험의 단서를 찾았던 비비안..
그 장면이 왜 자꾸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는지는
내 안의 나를 더욱 들여다 볼 일의 숙제로 남는다.